"EBS 교재 봐도 후회, 안봐도 후회" 연계율의 허구
수능 70% 연계불구 까다로워 갸웃 …언수외영역만 28종 부담 가중
2010년 11월 22일 (월) 14:38:12 김원정 기자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EBS 강의와 교재에서 연계된 문제를 전 영역에 걸쳐 70% 이상 출제한다는 방침 아래 실시돼 관심을 모았다. 실제 뚜껑을 연 결과 연계율은 지켰지만 기출문제를 변형해 수험생의 체감 난도가 높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결국 '원리를 잘 이해한 학생'이 고득점을 올렸다는 설명인데 이를 두고 수능과 EBS 연계율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연계율은 어떻게 산정하나

이번 수능은 정부가 공언한 연계율을 일단 맞췄다는 평가다. 안태인 수능 출제위원장(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은 지난 18일 "처음부터 EBS 교재를 앞에 놓고 출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계율은 EBS 교재 지문을 활용하거나 문항유형을 변형한 문항 등을 더한 수치다. 18일자 <EBS 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수능은 EBS 교재와의 연계율이 전체적으로 70%를 웃돌았다.

세부적으로 언어영역은 전체 50문항 가운데 36문항(72.0%), 외국어영역은 전체 50문항 가운데 35문항(70.0%)이 교재와 연계된 문제였다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밝혔다. 또 수리영역의 경우 '가'형은 전체 40문항 가운데 29문항(72.5%), '나'형은 전체 30문항 가운데 24문항(80.0%)이 교재에 나온 문항을 변형한 것이었다.

18일자 <EBS 뉴스>는 언어영역에서 EBS 교재 지문을 활용한 문항이 46%를 차지했고, 수리영역은 EBS 교재에 나온 문항을 축소·확대, 변형한 문항이 절반에 달했으며('가'형 47.5%, '나'형 53.3%), 외국어영역에서도 문항유형을 직접 활용한 사례가 50%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예컨대 언어영역 33번의 경우 <인터넷 수능 비문학> 교재 89쪽 6번과 지문과 답지가 거의 같고, 수리 '가'형 14번은 <파이널 실전 모의고사> 35쪽 5번과 비슷했으며, '나'형 14번은 <파이널 실전 모의고사> 4쪽 10번과 그래프가 비슷했다고 <EBS 뉴스>는 밝혔다.

또 외국어영역 41번은 <10주 완성> 96쪽 5번 문항의 지문을 100% 인용한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EBS 뉴스>는 "언어는 지문, 외국어는 유형을 활용한 문항이, 수리는 축소, 확대, 변형 문제가 연계율을 좌우했다"고 분석했다.

▷까다로운 문제로 EBS 연계율 무용론 제기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카페 '수만휘(수능날 만점 시험지를 휘날리자)' 등 수험생들이 이용하는 온라인게시판에 속속 올라오는 후기 역시 '한번쯤 본 문제'였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EBS 기출문제를 그대로 내지 않고 문제를 꼬아서 풀기 어려웠다는 내용이 우세하다.

EBS 교재 내용과 연계된 문제라 해도 지문이나 유형 자체가 어려워 단순히 교재를 푼 것만으로 실전에서 득을 보긴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이 경우 '원리를 잘 이해' 하고 있는 상위권 학생을 제외하고는 정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굳이 EBS 연계율을 내걸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실제 '수만휘' 등 온라인에 게시되는 수험생 견해 가운데는 'EBS 교재를 안 봐도 후회, 봐도 후회'한다는 내용이 곳곳에 눈에 띈다.

교과부는 당초 '학교에서 배운 교과내용을 충실히 학습하고 EBS 교재를 열심히 풀면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를 들어 'EBS 교재 수능 연계론'을 제시했다. EBS는 이에 영역별 10여 권에 이르는 수능 반영 교재(언어영역 10권, 수리영역 7권, 외국어영역 11권)를 잇따라 내놨다. EBS 강의및 교재 연계율 70%를 체감하기 위해서는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에서만 28권의 교재를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회탐구나 과학탐구 교재까지 합하면 1년 내내 이들 교재만 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험 대비 일반 참고서·문제집과 견줘 EBS 교재의 가격이 싸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번 수능에서 고득점을 올린 일부 학생을 제하고는 결국 교재비만 지출했다는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단순한 교재 풀이로 고득점 벽을 돌파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입증된 만큼 EBS 교재의 변형문제를 대비한 사교육이 등장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학벌주의 엄존하는 사회에서 사교육 경감책 실효 있을까

EBS 관계자는 "대입을 앞두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게 수험생과 학부모들 마음인 만큼 사교육 혜택을 골고루 누리지 못하는 한국사회에서 공교육 보완재로 누구나 이용 가능한 EBS 강의와 교재가 차선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밝혔다.

엄민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실제 교재에 나온 도표와 지문이 시험에 나와도 그것을 활용한 다른 식의 문제가 나왔기 때문에 학생들은 속았다는 느낌을 받게 된 것"이라며 "결국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교재를 분석하는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고 애초 교과부가 내세운 사교육 경감 효과에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교과부가 애초 EBS 연계론을 통해 의도한 것도 수도권 중산층 이상 수험생과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수험생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EBS 교재도 교과 과정을 바탕으로 만드는 것인 데다 학생들의 이해도와 학습량은 어차피 상중하로 나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험 대비 교재가 왜 꼭 EBS 교재여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시험의 난도 역시 언제나 불씨를 안을 수밖에 없다. 이번 수능의 경우 쉽게 출제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어 'EBS 연계율을 높이고도 체감 난도가 높았다'는 불만을 사고 있지만, EBS 기출문제의 변형 정도를 낮춰 중위권·상위권이 대폭 늘어도 그것대로 변별력을 잃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학벌주의 병폐가 엄존하는 한 대입정책이 숙명처럼 떠 안을 수밖에 없는 한계인 셈이다. EBS 관계자는 "근원적으로 대학을 안 나와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않는 한 최선은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도 "교과부가 처음 연계율 방침을 밝혔을 때 환영을 하면서도 염려했던 게 EBS 교재만 공부해도 수능 문제의 70%는 맞춘다했지만 나머지 30%를 놓고 학생들은 결국 경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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